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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하나, 돌 하나

 

문득,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들은 마음속에서 미세하게 떠도는 삶의 입자들이 서로 만나고 쌓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찾아오는 선물과 같다. 무엇을, 어떻게 건강하게 살고 싶단 말일까? 아직 그 선물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한 채, 수많은 마음들이 나를 이끌고, 감싼다. 그 미세한 삶의 입자들이 쌓여 만들어 낸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바꿔 말해보면 ‘어떤 삶’에 대한 의지를 품어 보겠다는 말과 같다.

 

지금까지 창작 활동을 지속하면서 선명하게 알게 되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어렴풋이 꿈꿔왔던 예술-삶이 이 세계가 잘 키워온 환상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태도나 열정, 의지보다는 학교와 제도권에서 끊임없이 갱신시켜 탄력 있고 맨질맨질하게 뽑아내서 위대한 예술로 보이도록 만들어낸다. 그래, 뭐. 세상은 모든 것이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술이 환상이라는 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런데 그 환상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예술-삶의 가치를 오직 한가지로 획일화 시키는 강력한 무기로 변할 때, 그 앞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삶의 입자들이 내안에서 둥실 둥실 떠다니며 서로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 떠도는 마음들이 마침내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오게 된 것은 한 장의 사진과 만나게 되면서 부터였다. 사진속의 두 사람은 길 위에 앉아서 아이 같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여리고 푸릇한 꽃들과 낡은 사물들을 뚝딱뚝딱 손으로 매만져 작은 노점을 차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종이박스에는 ‘꽃’이라는 글자와 가격이 적혀있는 걸보니 두 사람은 길 위에서 꽃을 팔고 있는 모양이구나. 꽃다발 가격이 2천원인걸 보니 지나치게 욕심 부리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나무판자 하나와 커피자루를 덮어서 작은 매대를 만들었구나, 오래된 잡지나 이면지, 신문지로 꽃을 감싸는 포장지로 쓰고, 직접 찍고 만든 사진과 컵받침은 작은 돌맹이들을 얹어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올려두었구나. 그리고 그 곁에서 두 사람이 활짝 웃고 있으면 세상에 하나 뿐인 소박하고 작은 노점하나가 길 위에 세워지는구나. 그런데 이 노점 참, 소박한데 참, 아름답구나. 두 사람은 삶을 참, 소박하고 참, 아름답게 바라보고 있구나.‘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속의 두 사람은 생태와 농업분야에 관심을 두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강수희, 사회, 문화, 환경과 생태에 탐구하는 예술가 패트릭 라이든(Patrick Lydon)이다. 그들의 활동과 삶의 이력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사진 속 두 사람의 해맑은 미소와 소박한 살림의 손때 묻은 작은 노점이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그 이후에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자연농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사이트와(www.finalstraw.org) 개인 블러그(http://vertciel.blog.me)를 통해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더욱 세밀하게 만 날수 있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생활의 기록들을 한겹, 한겹 만나면서 노점을 꾸리던 손길이 느껴지고 세상을 마주하는 마음이 들렸다. 작고 소박한 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드는 삶의 버릇과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흔적을 통해서 내가 본 한 장의 사진 속 풍경이 삼청동의 어느 골목길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고 있는 자연농 다큐의 후원 캠페인을 위한 자리이자 사람들과 소통하고 만나기 위해 작은 노점을 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노점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에 대한 목소리를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필요할 때 차려지곤 했다. 강수희씨는 작은 공연이 열리는 가게 앞 골목길에서 좌판을 열거나, 방울토마토에 두물 머리를 알리는 쪽지를 달아서 나눠주는 ‘지하철 토마토 키세스 대작전’을 펼치기도 했다고 한다.

 

길 위의 작은 노점들을 통해서 세계와 마주 하는 두 사람의 손은 묵직하지만 가볍고, 성실하지만 생색 내지 않고, 소박하지만 힘이 있다. 그저 꽃 하나, 작은 돌맹이 하나, 두 사람의 미소 하나가 순간, 내 삶을 들어 올렸다. 마음속에서 떠도는 삶의 입자들을 만나게 해주고 단단한 표면위로 올라 올수 있도록 끌어 주었다. 이 세계의 ‘환상’에 기대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의 잠재된 특이성과 감각으로 키워나가는 ‘상상’을 계속해보라고 응원해주었다. 그 상상이 소박하고 미약할지라도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천천히 일궈내서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보여 주었다. 꽃 하나, 작은 돌맹이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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