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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전시장 뒤편, 미술관 도서자료실 사물함 99번을 열면 완월동으로 초대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누군가에게 그 메시지는 작품의 일부일 것이고, 일반적인 텍스트일 것이고,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알 수 없는 이끌림의 ‘신호'로 인식 하는 자, 그래서 메시지를 뚫고 나오는 존재들, 그 희박한 존재들을 위해 사물함 99번은 열려있다. 완월동을 비롯한 성 산업,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전시장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차마 다 다뤄질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초대>는 그 현실의 한 단면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인 샘이다. 이 통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제 힘에 달려있다. 나는 그 통로 안에서 어둠을 밝히는 안내자로써 기꺼이 기다릴 뿐이다. 낯선 완월동을, 낯선 안내자와 함께 걷기를 요청하는 이 초대에 과연 누가 응할 것인가? 전시가 시작되고 몇 주가 지난 후 한통의 메일이 도착하였다.

 

“ 아픔을 고스란히 느꼈습니다. 인식이 조금은 더 성숙해지는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부터 일단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서 완월동 걷기를 신청해봅니다”   

                                                                                                        2016년 1월 6일 신재현

 

 

메시지를 뚫고 현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이는 신재현, 박수정씨이다. 2016년 1월 16일 오전 11시 우리는 남포동 부근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만나는 얼굴의 낯선 기운들은 완월동에 관한 이야기, 우리 주변의 성산업에 관한 이야기들로 번져나갔다. 일상 속에 자연스레 뒤섞여 있는 성 산업의 이미지들은 재현씨와 수정씨가 자라오면서 스쳐지나갔던 풍경 속에서 어떤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보던 빨간 불빛과 언니들, 인터넷에 수많은 성 구매 광고들, 이날의 발걸음이 빨간 불빛 뒤편에 보여 지지 않았던 성 산업의 단면을 조금이라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흔히 성매매 집결지라고 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완월동은 부산의 가장 큰 번화가인 남포동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완월동의 안과 바깥의 물리적인 감각을 재현씨와 수정씨가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포동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하였다. 트리 거리, 젊음의 거리, 영화의 거리, 조명의 거리, 이 거리를 매우는 음악과 소음들을 가로질러 완월동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아서인지, 유난히 따뜻한 겨울 햇볕 때문인지 왠지 모를 편안함까지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 따뜻함은 곧 불편함으로 변한다. 걸으면서 우리는 유난히 말이 없었지만 어떤 불편함을 서로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불안하거나 아쉽지도 않았다. 완월동이 한 번의 걸음으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함께 걸었던 세 사람의 걸음을 짧게나마 기록해둔다.

 

 

 

 

완월동이라 부르긴 하지만, 현재 이 지역의 공식명칭은 충무동, 초장동이다. 완월동이라는 명칭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완월동의 집결지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 이 길을 가로공원이라 부른다. 현재 일제강점기때 흔적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가로공원의 형태는 그 때 그 모습과 유사하게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우겨진 수풀들 뒤편으로 집결지가 있을거라고 상상하기 힘든 만큼 포근한 정경이다. 재현씨와 수정씨는 천천히 주변의 풍경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로 공원 뒤편으로 연결된 집결지를 중간관이라고 부른다. 완월동에는 현재 아랫관, 중간관, 윗관 세가지 길의 형태로 집결지가 형성되어 있다. 보통 집결지하면 생각할 수 있는 전면 유리입구와, 붉은계열의 커튼들로 치장된 업소들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 있다. 수정씨와 재현씨는 완월동 집결지의 규모에 놀라곤 했다.

  

보통 가게 앞에 이런 모양의 철재의자가 나와있다면 그곳은 영업을 하는 업소이다. 손님들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는 이모님들을 나까이 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앉아서 영업을 하신다. 오전에는 영업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이모님들이 나와 있는 경우는 잘 없지만, 윗관으로 가면 업소 앞에 나와계시는 이모님이 종종 계신다.

업소 뒷길을 지나서면 산복도로와 연결된 풍경이 가까이 보인다. 성매매가 번창하던 시기에는 산복도로 윗 지역까지 모두 업소로 활용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주택가이고, 완월동에서 일을 그만둔 언니들이 완월동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함께 걸은 후 다시 완월동의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실제로 와보니 어떠한지, 서로 무엇을 느꼈는지 짧은 시간 속에서 속속들이 다 나누지는 못했지만 이 걸음이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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